창세기 12장 {아브라함. 그 여정의 시작}
▣ 창세기 12장 요약
1절 신은 아브람(아브라함으로 개명 전 이름)에게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이야기합니다.
2절 더불어 신은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너의 이름을 크게 하고, 너는 복이 될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3절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신인 내가 복을 주고,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는 신인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 너로 인해 복을 얻을 것이라 합니다.
4절 이에 아브람은 신의 말에 따라갔고 조카인 롯도 그와 함께 갔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5절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롯과 하란에서 모은 전 재산과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6절 아브람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7절 신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했고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난 신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8~9절 거기서 벧엘 동쪽 산에 장막을 쳤고, 서쪽을 벧엘(지명), 동쪽은 아이(지명)였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람은 신께 제단을 쌓고, 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점점 남쪽 방향으로 옮겨 갔습니다.
10절 아브람이 있는 땅에 식량이 부족하여 아브람이 애굽(이집트)에 잠시 살려고 이동했습니다.
11절 애굽에 가까이 갔을 때 아브람은 그의 아내에게 당신은 아름다우며,
12절 애굽 사람들이 당신을 볼 때 나의 아내라고 하면 나를 죽이고 당신은 살게 할 것이니
13절 당신은 나의 누이라 하고 그렇게 하면 내가 안전하고 당신으로 인해 내 목숨이 지킬 수 있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14절 아브람이 애굽에 도착했을 때 애굽사람들이 그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15절 바로(파라오)의 고관들도 그 여자를 보고 바로의 앞에서 칭찬하며 그 여자를 궁으로 들였습니다.
16절 이것으로 인해 바로가 아브람을 후하게 대하여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예와 나귀와 낙타를 얻었습니다.
17절 신은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이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렸습니다.
18절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 그 여자를 왜 너의 아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물었고,
19절 왜 그를 누이라고 속여 내가 그 여자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는지 물었고,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20절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들을 가게 하라고 명령했고, 아브람과 그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냈습니다.
▣ 아브람이 신에게 일방적으로 받은 축복
아브람은 어떤 사람인지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노아를 선택한 신의 의지와 동일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엔 어떤 자격도, 어떤 인품도, 어떻게 신을 섬겼는지, 혹은 신에게 합당한 행동을 했는지, 그가 과연 신께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과연 있는지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는 신에게 선택받은 자였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아브람이지만 이 이삭을 낳기 전 아브람의 신에 대한 믿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참 제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신을 본 자와 신을 믿는 자는 차이가 있을까요?
신은 종종 아브람에게 직접 말하고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삭을 낳기 전 아브람의 신에 대한 믿음은 글쎄요. 우리가 소위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이삭을 낳기 전 아브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한 번씩 생각해봅니다. 이와는 대조되는 것이 라합의 믿음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기생이라 지칭된 라합, 성매매를 하는 여자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한데, 고대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관 주인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만 뭐 그런 수식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그 라합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할 당시 신이 하신 모든 일을 들었고, 그 신이 하늘과 땅의 유일한 신인 줄 알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삭을 낳기 전 아브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와 대조된 라합을 떠올리며 40년의 광야생활 동안 신을 직접 경험한 이스라엘의 믿음과 라합 한 명의 믿음을 떠올리며 또 비교해 봅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라는 말을 결국 떠올리게 되고, 신의 침묵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보곤 합니다. 단순한 생각에는 신이 실재하고 창조자이시라 모두에게 짠하고 나타나 보여주고 말한다면 누구나 그것을 믿고 따를 것이라 생각해보지만 이는 자신이 만든 사람에게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느껴봅니다.
아브람은 신에게 선택받았고,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민족의 조상, 민족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이름이라는 것이지요.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으로 인해 복을 얻을 것이라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이 복이 과연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기록에 의하면 땅의 모든 족속이 받게 될 복이라 말할 수 있겠네요. 여러분은 무언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뭐 단 하나 밖에는 떠오르지 않네요.
이 복의 시작이 바로 아브람이라는 조상이고 이 복의 근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신과 처음 약속한 사람이니 충분히 이 복의 뿌리가 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족속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복의 뿌리인 이름이 바로 아브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자신들의 조상들이 조성해놓은 환경, 고향의 익숙함을 놔두고 신이 보여준 땅으로, 신이 말한 대로 바로 떠납니다. 이 12장에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옮겨갔다고 단순히 표현하고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 그리고 기록된 대로 거기엔 또 다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거기로 들어갔다는 것은 단순히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엔 수많은 갈등 상황과 그 지역에 적응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다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아브람의 신에 대한 순종이 단순한 믿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네요.
▣ 애굽으로 간 아브람의 속임수
신의 말에 순종한 아브람은 한 가지 현실적 상황에 부딪치게 됩니다. 땅에 기근이 심하여 먹을 것을 얻을 수가 없어진 것입니다.
애굽으로 간 것을 보니 거기는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있었나 봅니다.
애굽으로 간 아브람의 행동은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행동이 맞는지 의심해볼 만한 충분한 상황을 만들어 줍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내에게 누이라고 이야기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애굽의 왕에게 아내를 삼으라고 내어주기까지 합니다.
신은 아브람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까먹은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아브람은 이런 인간의 얄팍한 속임수를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썼을까요?
이런 것일 수는 있겠습니다. 그는 신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그 약속을 자신이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본인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랬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를 애굽의 왕에게 내어주면서 아브람의 가정은 실상 깨어지고, 혹시 애굽의 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의 권력과 힘을 사용하여 충분히 그들을 멸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은 상상이 됩니다.
어쨌든 신은 애굽의 왕에게 아브람의 아내를 데려가 아내를 삼은 것에 대하여 큰 재앙을 내려 깨닫게 하고, 아브람의 가정을 다시 회복시킵니다.
사람은 매 순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 부딪치고, 지식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은 그 선택에 관여하지 않고 사람이 그 선택에 대해 충분히 책임을 지도록 했지만, 그 사람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가지고 신은 그 의지를 또 기가 막히게 이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의 말에 순순히 고향을 떠나는 용기와 순종의 자세를 보여준 아브람과 애굽에서 자기의 목숨을 지키려고 급급한 속임수를 선택한 아브람.
이 12장에서는 참 대조적인 아브람의 두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13장에서는 아브람의 어떤 에피소드가 또 펼쳐질까요?
13장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