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홍수}
▣ 창세기 7장 요약
1절: "신"이 노아의 의로움을 보았다고 말하며 노아와 그 가족들을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합니다.
2절: 신은 정결한 짐승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 암수 둘씩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근데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은 앞에 나오지도 않는데 구분하고 있네요)
3절: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온 지면에 퍼트려라고 합니다.
4절: 신은 지금부터 칠일 후에 사십일 밤낮 동안 땅에 비를 내려 땅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말합니다.
5절: 노아가 신이 자기에게 명한대로 다 준행합니다.
6절: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는 600세였습니다.
7절: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8절: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모든 기는 것들이
9절: 신이 노아에게 명한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10절: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입니다.
11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습니다.
12절: 사십일 동안 낮과 밤에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13절: 그날에 노아와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절: 땅에 모든 생명 있는 것이 다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절: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16절: 들어간 것들은 모두 암수이며 신이 그에게 명한대로 들어갔고 신이 문을 닫았습니다.
17절: 홍수가 사십일 동안 계속되면서 물이 많아져 방주가 떠올랐으며
18절: 물이 더 많아져 방주가 물 위를 떠 다녔습니다.
19절: 물이 계속 넘쳐 천하의 놓은 산이 다 잠겼고
20절: 물이 불어 십오 규빗(1규빗=약 45~46cm이며, 보통 사람의 중지 손가락 끝부터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합니다)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겼습니다.
21절: 새와 짐승과 땅에 기는 것, 모든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22절: 육지에 있는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습니다.
23절: 이 육지의 생명 있는 것들이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고, 노아와 그와 함께 있던 것들만 남았습니다.
24절: 물이 150일 동안 땅에 넘쳤습니다.
▣ 신의 결단
신은 노아에게 말했던 계획을 결국 이행합니다. 7장의 기록에는 약간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있네요. 2절에 신은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을 데려오라고 노아에게 명령했는데, 15절에 보면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이렇게 기록되고 있어서 뭐가 맞는 것인지 궁금해하실 분들도 있지만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6장 20절에도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노아에게 나아오리니 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7장 2절은 추가적인 명령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7장 이전의 내용에서는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창세기의 이후의 내용들로 보아 정결한 짐승은 아마도 신께 드리는 제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부정한 짐승과 차이를 보이게 많이 방주에 들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창세기의 기자가 아무래도 당대의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결과론적인 기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7장 이전에 신께 제물을 올린 내용 나타나는 것은 가인과 아벨의 내용뿐입니다. 그 사건에서는 제물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신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내쫓긴 후 최초의 살인 사건이라는 것이 중점 내용입니다.
창세기를 읽다 보면 참 많은 질문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가진 지식과 지혜로는 거진 대부분이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추론할 수밖에 없는 두리뭉실한 답변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방주 이야기만 해도 그 방주 안에 모든 생물이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시작해서 다 들어갔다고 치면 그들은 어떻게 홍수의 기간 동안 먹고 마시며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남았을까?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쏟아집니다.
그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결국 신의 존재, 신의 가능, 신의 의지로 설명할 수밖에 없겠네요.
결국 성경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시작합니다. 그 신은 사람적인 생각으로는 생각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신을 완벽하다고 할 때 그 비교대상을 무엇으로 할까요?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가진 생각, 틀 안에서 신을 설명하고 신의 완벽을 논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말한 신의 완벽함은 과연 맞을까요?
어쩌면 신은 사람이 생각했을 때 보다 더 완벽하지 않을 수도, 아니면 그 완벽이라는 것을 초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내가 생각했을때 신이라면 이 정도, 저 정도는 되어야 신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을 인간적 한계에 가두는 대표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은 완벽하다"는 이 문장은 정확하게 신의 한계를 인간적인 생각으로 규정짓는 문장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의 능력이 어떤 문장으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지요. 증거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도대체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을 우리는 의문을 가지고 그 의문에 답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 같습니다. 여담이 너무 길어졌네요. ^^;
▣ 구원받은 노아
노아가 600세가 되던 해, 둘째 달, 열이레 날(17일) 비가 40일 동안 낮과 밤에 쏟아지고, 깊음의 샘들도 터졌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잠겼습니다.
신이 준비하라고 했던 방주는 준비되었고, 신이 챙겨서 방주에 들이라는 동물들은 노아에게 스스로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신은 노아를 직접적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다"
신의 이 평가로 그는 두 번째 의미의 아담이 되었으며, 그의 아내와 세 아들, 그리고 며느리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TMI: 노아의 가족 이야기를 하니까 "배 船(선)"이라는 한자어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선박을 말할 때 쓰이는 한자입니다. 이 한자는 "배 舟(주)"+"여덟 八(팔)+"입 口(구)"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풀어보면 배에 여덟 사람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아+아내+세 아들+세 며느리는 8명이지요. 배를 표현하는 "선"이라는 글자의 구성이 참 신기하네요. [이 외에도 금할 禁(금), 마귀 魔(마), 탐할 婪(람, 남)이라는 글자들이 창세기의 이야기와 닮아 있는 것이 참 연구해볼 만한 매력적인 소재인 것 같습니다.]
▣ 남은 자들
이제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 밖에 남지 않았네요. 그들은 신의 의지에 직접적으로 부딪치며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물이 가득 찬 세상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사실 홀로 남겨진 것은 아닙니다. 신과 동행한 노아는 결국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그 신의 분노, 의지와 결단 속에서도 그는 신과 함께 했겠지요.
하지만 인간이기에 그 신의 의지에서 무서움을 느끼고,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방주 안엔 키도 없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신에게 기도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께 기도하고 나서 이후 행동들이 중요한데 그 방주 안에서는 그 행동마저도 제한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는 신을 완전하게 의지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습니다.
신은 이런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온전히 신은 자기가 만든 사람이 자신을 의지하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려운 상황을, 때로는 은혜로운 상황을 부여하면서 신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외치는 게 아닐까요?
홍수가 그친 8장 포스팅으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