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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쫓겨난 아담의 자식 이야기} 본문

기원(Genesis)

창세기 4장 {쫓겨난 아담의 자식 이야기}

Think teller 2019. 10. 30. 22:00

창세기 4장 요약

 

1~2절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낳았고, 아벨은 양치는 자이고, 가인은 농사를 짓는 자였습니다. 

(2절에서는 형인 가인보다 아우인 아벨을 먼저 소개합니다)

 

3~5절

세월이 지나 가인은 땅의 소산을 제물 삼아 신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삼아 "신"께 드렸습니다. 신은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고, 동생인 아벨의 제물은 받았습니다. 이에 가인이 몹시 분하게 생각하며 안색이 변했습니다.

 

7절

신은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이야기합니다. 

 

8~9절

가인이 아벨과 들판에 있을때 가인이 아벨을 죽입니다. 신이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냐고 묻자, 가인은 알지 못한다 말하면서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신께 반박합니다. 

 

10~12절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신은 가인에게 죗값의 저주를 내립니다. 

 

13~15절

가인이 신이 내린 저주가 너무 무겁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를 죽이려 할 것이라며 두려워하자 신은 가인에게 표를 주고, 가인을 다른 사람들이 죽일 수 없게 만듭니다. 

 

16~24절

가인이 신의 앞을 떠나 놋땅에 거주하면서 아이를 낳습니다. 에녹,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두 아내를 맞이 하면서 야발, 유발, 두발가인, 아마(두발가인의 누이)을 낳습니다. 그리고 라멕은 자신의 아내들에게 가인보다 더 벌을 받을 만큼 죄가 더 크다고 자랑처럼 떠벌립니다. 

 

25~26절

아담과 하와가 다시 아들을 낳았고,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신이 다른 씨를 주셨다는 뜻인 셋으로 이름하였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아 에노스 라 하였으며, 그때부터 사람들이 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목축 vs 농사

 

아벨은 양을 치는 목축을, 가인은 농사를 지었습니다. 

3절과 4절에서는 이들이 시간이 지나 각자의 소산으로 신께 제물을 드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이 결과론적인 의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뜬금없이 왜 갑자기 신께 제물을 드린다는 내용이 나올까요?

아담이 제물을 드린다는 내용도 없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아들들에게 가르쳤다는 내용도 없고, 신이 제물을 바치라고 하는 내용도 없지만 갑자기 제물을 드리는 두 아들들이 저는 조금 당황스럽니다. 

뭔가 생략된 내용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쓸데없는 의문이 드는 구절입니다. 

 

어떻게 되었든 각자의 소산물로 제물을 삼아 신께 드렸더니, 동생인 아벨의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은 신이 받았고, 땅의 소산을 제물 삼아 드린 가인의 농산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는데, 동물로 제물을 드리는 것이 나으냐?, 아니면 땅의 소산(즉, 곡식이나 손수 기른 야채 등이 될 수 있겠습니다)은 제물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냐? 하는 오해는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가만히 구절을 들여다보면, 신은 그 둘의 태도, 즉 마음의 상태인 진심이 담겨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한 것 같습니다. 

3절에 짧게 가인의 제물 상태를 기록한 것과 큰 차이점을 보이는 아벨의 제물 준비상태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록한 4절을 보면 신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마음의 상태를 봤다는 것이 추론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죄를 다스릴 지니라

 

개인적으로 이 7절의 이 말이 은혜가 됩니다. 

신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죄라는 것을 다스릴 수 있게 하신 것 같습니다.

죄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항상 우리 문 앞에 우리를 삼키려는 짐승같이 엎드려 있고, 죄는 항상 우리를 원하지만, 신은 다행히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주셨습니다. 

 

죄라는 것은 신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 자체를 말하기도 하고, 신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을 말하기도 하며,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지탄받고, 양심에 어긋나고 벗어나는 모든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이 직접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한 것이 저에게 적용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죄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도 있다고 생각하니 위안도 되고, 이 능력을 능가하는 죄들은 예수가 해결해준다라는 것을 믿으니 참 기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이 말이 개인적으로 참 은혜가 됩니다. 

 

 

라멕의 근자감 (근거 없는 감)

 

아담을 1대로 하여 2대 가인을 거친 7대 라멕은 본인이 가인보다 더 벌을 받아야 될 만큼 사람을 죽이고 죽였습니다.

신이 가인에게 내린 벌이 7배라면 본인은 77배라며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교만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단 라멕은 아내가 둘입니다. 

그리고 좀 웃픈(웃기면서 슬픈)부분은 20절인데 가인이 신께 저주를 받아 농사를 하지 못해서 그런지, 가인의 아들 야발은 가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아들이 가축을 치는 모습을 보면 자기가 죽인 동생 아벨이 늘 생각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한번 해봅니다.

 

다음 포스팅인 창세기 5장에서 다룰 아담을 1대로 하여 2대 셋(아벨을 대신한)을 거친 7대 에녹과는 다르게 라멕은 굉장히 대조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기록은 22절에 두발가인의 누이 이름(나아마)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진 자료를 찾아봐도 딱히 나오는 특이점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 아담

 

아담이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나 낳은 아들 둘은 이렇게 허망하게 망가져 버립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아벨은 영문도 모른 채 형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가인은 더 멀리 쫓겨나고, 그의 손자 라멕은 자신보다 더 많은 죄를 짓고 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가인은 이런 광경을 봤을까요?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후 창세기 5장에 아담의 족보에 가인의 기록은 없습니다. 가인은 몇 세까지 살았는지 기록되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를 낳았다는 것만 기록되었고, 그 자손도 라멕에서 기록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아담과 가인으로 이어지는 죄의 결과가 참으로 참담하네요. 

 

 

5장 포스팅으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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