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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장 {"아브라함", "사라", 이삭!!} 본문

기원(Genesis)

창세기 17장 {"아브라함", "사라", 이삭!!}

Think teller 2020. 3. 8. 22:55

1절: 아브람이 99세 때 신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며, 아브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고 하면서, 아브람 앞에 나타났습니다.

2절: 신은 다시 한번 아브람을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고 하였고, 

3절: 이에 아브람이 엎드렸고 신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4절: "나의 약속이 아브람 너와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

5절: "이 후로는 너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겠다."(신이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바꿔 준 이유, 그 이름 뜻이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6절: "너를 아주 번성하게 할 것이고, 민족들이 너에게서, 왕들이 너에게로부터 나올 것이다."

7절: "내 영원한 약속을 너와 너의 후손들 사이에 세우고 너와 대대로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8절: " 또한 너와 네 후손에게 현재 네가 거류하는 이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히 기업이 되게 하겠다."(이 기업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유산인 땅을 말하며, 원칙적으론 매매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기본 율법을 해석하여 장로들의 유전 등 하나님의 계명에 사람의 계명을 덧붙인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아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예수도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이런 부분에 대해 한번 지적한 적이 있지요. 이사야 29장 13절, 마가복음 7장 6절 참조)

9절: "그러니 너는 내 약속을 지키고, 너의 후손들도 대대로 지키게 해라."

10~11절: "너희 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아라. 이 예식이 너와 너의 후손 사이에 나와 대대로 지켜야 할 약속이며 포피를 베는 것이 약속의 표징이다."

12절: "집에서 난 자나 너희 자손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에게서 돈을 주고 산 자를 구분하지 말고 모든 남자는 난 지 팔일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

13~14절: "집에서 난 자든지 돈으로 산 자든지 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 약속의 표징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약속이 될 것이나, 포피를 베지 않은 남자는 나와의 약속을 배반 하였으므로 민족에서 끊어질 것이다."

15절: "그리고 너의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 라고 해라."

16절: "내가 사라에게 네 아들을 낳게 하여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겠고,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날 것이다." 

17~18절: 아브라함은 엎드려서 웃으며 마음 속으로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고, 사라는 90세니 어떻게 출산하냐고 생각하며, 아브라함은 신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19절: 신은 다시 말을 이어 갔습니다. "아니다. 너의 아내인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해라. 내가 이삭과 내 약속을 세울 것이며,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약속이 될 것이다."

20절: "이스마엘에 대해서는 내가 너의 말을 들었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고 아주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고, 이스마엘이 열 두 우두머리를 낳을 것이며, 큰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21절: "하지만 내 약속은 내가 내년 이 때에 사라가 너에게 낳을 이삭과 세울 것이다."

22절: 신은 아브라함에게 이 말을 마치고 아브라함을 떠나 올라가셨습니다. 

23절: 이후 아브라함은 신이 자기에게 말한 자기 집의 모든 남자들을 데려다가 포피를 베는 할례 예식을 하였습니다. 

24~25절: 아브라함이 포피를 벤 때는 99세,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벤 때는 13세였습니다. 

26~27절: 그 날 아브라함과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아브라함 집의 모든 남자들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브람 → 아브라함으로, 사래  사라로 !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정말 지겨울 정도로 반복됩니다. 계속해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과 중요하고 영원한 약속을 나타내는 의미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만 정말 구간 반복이 심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 17장에서는 이삭과 이스마엘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도 나오니까 약속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단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주는 의미는 하나님이 이들에 대한 주인이자 지배자라는 의미이며 그들이 하나님께 구속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을 주는 행위는 고대사회에서는 권세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는군요. 마치 중국의 황제들이 속국에게 왕호를 하사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아담에게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에 이름을 짓게 하는 행위도 이와 비슷한 의미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참고로 사라라는 이름의 뜻은 공주, 여왕, 여주인이라는 뜻이라고는 합니다. 주석마다 설명이 조금씩 다르네요. 어쨌든 아브라함과 비슷하게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이 될 수 있겠네요.

 

약속의 표징 할례  

할례라는 의식은 남근에서 포피를 잘라내는 고대 근동에서 사춘기, 다산, 결혼의식으로 널리 시행된 보편적인 의식이었고, 이것은 대부분 공동체의 일원임을 나타낼 때 쓰는 의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보편적인 문화 관습을 가지고 하나님은 곧 자신과 자신이 선택한 자들에게 새로운 목적으로 사용하고 그 의미를 변화시키는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지시한 할례는 아브라함과 자손들만이 아닌 그 집안 모든 남자에 대한 예식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집에 있는 종이나, 비록 아브라함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의 소유된 남자들은 모두 이 예식을 행하고 하나님 약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하나님 구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 민족에 국한된 극히 제한적인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8일 만에 이 예식을 행해야 했는데 굳이 설명을 덧붙인다면 고대에는 영아가 태어나면 사망률이 높고,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여 포피를 살짝 베었다고 하는데, 8일에 주목해야 할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고대 여성들은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아마 이 할례에서도 생략되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남성이 받게 되니 그 소유물인 여성도 자연히 그의 약속 아래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건 그냥 제 생각입니다.

 

약속의 아들, 드디어 드러나다. 

아브라함이 100세 때 사라가 아들을 낳아줄 것이라고 하나님은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지어주시기까지 합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웃으심, 부모가 자식이 생기면 얻게 되는 즐거움쯤으로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또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아브라함은 100세 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듣자 실소하며 웃습니다. 창세기 18장에서는 이 이야기를 들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실소를 금치 못하고 웃습니다. 이것과 관련된 이름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봅니다.)

이 부분에서도 아브라함의 태도에 저는 아리송함을 느낍니다. 자신과 아내의 한계를 느끼는 것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는 실소를 자아내며, 신의 말에 의아해하며, 이스마엘이 신이 약속한 아들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하지만 하나님은 참 아브라함을 좋아했나 봅니다. (그 비결이 참 궁금하네요.)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약속의 아들이 아니라고 정확히 이야기하고, 반드시 사라에게서 난 아들과 약속을 이어 갈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스마엘도 한 민족으로서 번성하고 축복할 것이란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한 예식, 그 고통을 참아가며 아브라함은 그의 말에 행동으로 즉각 그 지시를 행했습니다. 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헷갈리는 아브라함의 행동, 생각도 분명 있지만 이러한 즉각적인 행동이 신에게 이토록 일방적인 사랑을 받은 아브라함만의 비결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뿐 아니라 신이 각 개인을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개개인만의 이유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신의 개개인을 향한 일방적인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가 없는 영원한 약속이자, 그의 의지입니다.     

18장에서는 오랜만에 국면이 바뀌네요. 

18장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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