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재장전
창세기 22장 {네 아들을 바쳐라.} 본문
▣요약
1~2절: 신은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그를 불렀고, 네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의 내가 일러준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이야기합니다.
3절: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신이 일러준 이삭을 바치라는 장소로 갔습니다.
4절: 출발한 지 3일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은 신이 가르쳐준 그 장소를 멀리 바라봤습니다.
5절: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나와 아이는 저기에서 번제를 하고 올 테니,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6절: 아브라함은 번제 나무를 이삭에게 들게 하고, 본인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신에게 번제 드릴 장소로 같이 이동했습니다.
7절: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8절: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번제 할 어린양은 신이 자신을 위해 준비할 것이라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9절: 신이 일러준 그곳에 도착해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만들고, 나무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삭을 묶어 제단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10~11절: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찌르려고 할 찰나에,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급히 부르는 소리가 났고 이에 아브라함은 제가 여기 있다고 이야기하며 그 행동을 멈췄습니다.
12절: 여호와의 사자는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고 이야기하며, 아브라함 네가 네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야 네가 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고 했습니다.
13절: 그 후 아브라함이 주변을 살펴보니 뒤에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이 있어 그 숫양을 아들 대신 번제로 드렸습니다.
14절: 번제 후에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고, "여호와가 그 산에서 준비하신다"라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15~17절: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아브라함을 불렀고, 여호와가 스스로 맹세하여 아브라함 네가 이같이 외아들도 내게 아끼지 않았으니 너에게 큰 복을 주어 너의 자손들이 크게 번성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니 네 자손에게 대항하는 적을 정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8절: 또 네 자손으로 인해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이니, 이것은 아브라함 네가 나의 말을 지켜 행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 참조)
19절: 이후 아브라함은 종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브엘세바로 돌아갔습니다.
20절: 시간이 지나 아브라함에게 들리는 소식에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부인인 "밀가"가 자녀를 낳았음을 들었습니다.
21~22절: 그의 맏아들의 이름은 "우스"이고, 우스의 형제는 "부스", "그므엘("아람"의 아버지)", "게셋", "하소", "빌다스", "이들랍", "브두엘"입니다.
23절: 이 8명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과 그 아내 밀가의 자식들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인 "르우마"도 "데바", "가함", "다하스", "마아가"를 낳았습니다.
▣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기까지 드디어 왔네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이상하고 지나친 요구를 합니다.
왜 이상하고 지나치다는 표현을 했냐면, 일단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하나님의 요구는 앞뒤가 맞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 때 낳을 아들에 대해 이미 말했고, 이름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이라 계속해서 강조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이렇게 허무하게 자신에게 바치라고 하니 앞뒤가 맞지가 않는 이상하고 지나친 요구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명령에 대해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신이 말한 장소로 출발하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다른 군말 없이 신에게 순종한 이 행동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려 했을 때 신께 끊임없이 질문했던 아브라함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비교됩니다.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에게는 이 명령(이삭을 바치는 인신 제사)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명분과 반문할 수 있는 논리적인 이유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대답은 순종이라는 묵직한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당시의 상식으론 도저히 태어날 수 없는 조건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그 기적과 같은 이삭을 키우면서 하나님에 대해 앎이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더 이상 본인이 살기 위해 꾀를 내어 불안한 상황을 모면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 약속의 아들이 태어난 것을 본 이후 모든 것을 자신을 인도한 신에게 맡겨버린 진정한 자유자로서의 진짜 조상 아브라함이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출발한 지 3일쯤에 하나님이 말한 장소 "모리아"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주석에서 모리아라는 뜻이 여호와가 준비하시다는 뜻이라고 되어 있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이 일이 있고 난 후의 뜻이 그렇게 굳어진 것인지, 아니면 이 일 이전에도 모리아의 뜻이 여호와가 준비하시다는 뜻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외아들을 바치라는 신의 명령을 듣고 묵묵히 수행하는 아브라함의 감정선은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비록 순종이라는 행동을 택한 아브라함이지만 그 속에 얼마나 또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요?
TMI : 제가 가진 주석에는 이 아브라함의 놀라지 않고 묵묵히 신의 요구에 응하는 것을 고대 근동에서는 인신 제사가 다산을 위해 흔하게 이루어져 그 문화에 노출되어 있고, 아브라함 그도 인신 제사를 하는 것이 익숙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7절에 보면 이삭이 번제 할 어린양이 어디 있냐고 묻는데, 이 질문을 통해 아브라함이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신을 예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이삭은 2~3일 여행길도 견딜 수 있고, 나무도 짊어질 수 있는 충분한 나이였습니다. 그 충분한 나이가 될 만큼 경험했던 아버지의 예배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이 질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석을 참고한다면 읽고서 한 번 충분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정말 이 주석이라는 것은 참고할 만한 정도이지, 답을 정해주거나, 명확한 사실로 판명된 것은 절대 아니니 말입니다.
▣ 이삭의 알기 힘든 담담함
아브라함은 진짜 이삭을 죽여 바치기로 결심했나 봅니다. 그는 데려온 종 2명을 기다리라 하고 이삭과 단 둘이 제단을 만들 장소로 이동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종들도 아브라함의 제사 방식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종을 데리고 가면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이려고 하는 그의 행동을 분명히 말릴 것이고, 난장판이 될 것임이 충분히 예상되니 그랬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진짜 이상한 것은 이삭의 알 수 없는 담담함입니다. 당시 희생되는 제물을 결박하는, 즉 줄로 묶는 행위는 흔한 일이라고는 하는데 9절 하반부에는 제물을 줄로 단단히 묶는 이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유일한 제물을 묶는 행위의 묘사라고 하는데...확인하기 전까진 전 no인정)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기록과 실제 상황이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기록만 놓고 본다면 자신을 묶는 아버지를 보며 침착함을 유지하는 이삭을 볼 순 있습니다. 이것을 이삭의 순종이라 많이들 설명하고 있는데, 무리는 없어 보이지만...노코멘트 하겠습니다.
▣ 예수에 대한 약속
이후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고 할 찰나에 하나님은 급히 아브라함을 찾습니다. 이후 상황은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18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부분은 창세기 12장 3절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듯한 부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약속의 부분이 예수에 대한 언급이라 생각합니다만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건 제 의견일 뿐 다 각자의 생각이 나름대로 있기 때문에 그 입장을 충분히 존중합니다. 하지만 예수 외에는 달리 생각나는 건 딱히 없네요. 12장에서 크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의 외아들을 신께 바치는 기록을 본 후 이 약속을 본다면 예수의 구원사역과 참 많이 닮아있고 이 약속이 예수에 대한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과 밀가의 아들중에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다고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리브가는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됩니다.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넣은 듯한 뉘앙스의 이런 기록들을 보면 충분히 결과론적으로 창세기가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당시 기록을 남긴 것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 훗날 어떤 시점에서 어떤 영감으로 이 기록이 정리되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나홀과 밀가의 아들들을 소개하는 중에 그무엘과 브두엘만의 일부 자식을 기록해놓은 것도 특이하긴 하네요. 브두엘은 리브가의 아버지입니다. 리브가는 아시다시피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입니다. 그무엘의 자식인 아람에 대한 것은 딱히 이거다 할 만한 정보는 없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기록은 거의 막을 내리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23장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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