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재장전
창세기 20장 {그랄 땅에서} 본문
▣ 요약
1~2절: 아브라함이 "헤브론"의 "마므레"지역에서 "네게브" 땅으로 이동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살면서, 아내 사라를 여동생이라 했고, "그랄"지역 왕인 아비멜렉은 사라를 데려갔습니다.
3절: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온 날 밤에 아비멜렉의 꿈에 신이 나타나 그에게 네가 아브라함에게서 데려간 그 여자로 인해 네가 죽을 것이니 그 여자는 남편이 있는 여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4~5절: 아비멜렉이 아직 사라와 관계를 하지 않아, 그는 "신께서 죄짓지 않은 백성도 멸합니까? 아브라함은 나에게 그녀를 여동생이라 하였고, 사라도 아브라함을 오빠라 했으니 그 사실을 모른 저의 행동은 죄 없는 순수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6절: 신은 그 대답을 듣고, 네가 모르고 한 행동임을 내가 알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너를 막아 죄짓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7절: 그리고 신은 이제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내라고 이야기하며 아브라함은 선지자이며, 그가 너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니 네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들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8절: 아비멜렉은 아침에 모든 종들을 불러서 꿈에 모든 일을 말했더니 그들 모두가 굉장히 두려워하였습니다.
9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 내가 너에게 무슨 해가 되는 일을 했냐고 하면서 너의 아내인 것을 모르고 데려간 일로 인해 온 나라가 큰 죄에 빠져 망할 뻔했으니, 나에게 여동생이라 말하고 너의 아내를 데려가게 허락한 것은 합당하지 않을 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10절: 그리고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무슨 이유로 너의 아내를 여동생이라 하고, 너의 아내 데려가는 것을 허락했냐고 물었습니다.
11~13절: 아브라함은 이 지역에서는 나를 이끈 신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 내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봐 걱정됐고 사실 그녀가 내 이복동생이기도 하면서 내 아내가 되었기에 그렇게 말했다고 하면서, 나를 이끈 신이 인도한 지역으로 다닐 때 나의 아내 사라에게 약속하기를 가는 곳마다 나를 남편 말고, 오빠로 소개하라고 했고 그것이 나를 위한 배려라고 약속했기에 내 아내 사라도 그렇게 한 것이라고 아비멜렉에게 말했습니다.
14~16절: 아브라함의 말을 다 듣고 아비멜렉은 양과 소, 종들을 아브라함에게 내어주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돌려보내며, 아브라함에게 내 땅에서는 네가 마음에 드는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겐 당신의 오빠에게 은 천 개를 주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당한 당신의 수치를 갚아주었다고 했습니다.
17~18절: 아브라함을 이끈 신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아비멜렉이 데려간 일로 인해 아비멜렉 집에 출산을 막아서, 아브라함이 그 일로 기도했고, 신은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첩들을 다시 출산하게 했습니다.
▣ 세겜 -> 헤브론(마므레 상수리나무) -> 네게브(그랄)
아브라함은 네게브 땅에 있는 그랄이라는 곳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유목민의 특징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가축들을 먹여야 하니 살 수 있는 근방의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동경로는 지도를 참조하세요.
이 그랄이라는 곳에서 12장의 피난 갔던 애굽에서 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낯설고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닌 환경에서 아브라함, 사라가 서로 약속한 것과 같이, 그들은 서로를 다른 환경에 갈 때마다 부부라기보다 서로가 남매라는 사실을 더욱 강조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안전에 대한 제안이었고, 애굽에서의 선례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또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신을 직접 대면하고, 그 앞에서 심판을 다시 생각해달고 용기 있게 말하던 아브라함은 다시 한번 지역을 이동하면서 여호와 대한 믿음이 초기화된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을 이끈 여호와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상관없이 그가 자신의 약속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간섭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아비멜렉은 무슨 죄?
그 당시 왕들의 행동이나, 새로 들어온 이주민에 대한 관습들이 정확히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로가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주민은 마음에 드는 땅에 정착하려고 하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고, 왕은 그 이주민에게 정착을 허락하는 의미로 왕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석에는 근동 지방에서 남편이 있는 여인을 빼앗아 부인으로 만드는 간음 행위는 엄하게 처벌받았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뭐 고대에 이런 윤리의식이 뛰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 지역에 왕은 그만큼 힘이 있으니 마음대로 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아비멜렉은 사라를 아브라함의 아내인지 모르고 데려옵니다. 물론 목적은 자신의 첩으로 만들기 위해서겠지요. 사라를 데려가는 그 상황이 생략되어 있기는 하지만 유추해본다면 그랄 지역에 이른 아브라함은 그 지역 왕이 관심을 보인 사라가 여동생이라 소개했고, 아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뭔가 찝찝했는지 사라에게도 아브라함에 대해 물어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라도 아브라함이 남편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습니다.
아비멜렉은 죄가 없는 듯 보이지만, 결국 본인의 육체적 탐욕으로 인해 아브라함을 이끈 여호와라는 자신이 모르는 신에 의해 심판받을 뻔합니다.
▣ 하나님은 결국 약속을 지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인도하면서 지겹게 수차례 약속합니다. 밟는 모든 땅을 너에게 주겠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관습의 방법을 사용해 아브라함에게 증표로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이야기 한 뒤 아직까지 아브라함에게 요구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가 말한 대로 익숙한 고향 땅을 떠나는, 어쩌면 고생길이 뻔히 보이는 길을 따랐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어떤 것을 전제로 하면서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해주겠다고 아브라함에게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떠난 이후 일방적인 약속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브라함의 의아스러운 행동은 독자의 착각일 뿐 아브라함 본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약속을 성취해야 하므로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그 행동의 결과에 직접 관여해서 아브라함에게 더 나은 이득이 되도록 반복해서 만들어 주고 있음을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자의 입장으로 생각했을 때 아브라함의 행동은 믿음이 없는 갈팡질팡하는 행동을 보이고 하나님이 해결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라면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된 행위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것을 미루어 짐작할 때 현재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신 약속 또한 동일하게 하나님이 그 약속에 관여하고, 그 약속이 이루어져 더 나은 결과로 채워질 수 있음을 믿고, 감사할 수 있겠네요.
21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집에 여러 일들이 생깁니다.
21장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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